18세기 중반 이후 한반도의 환경이 파괴되어 갔습니다. 산이 헐벗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인구가 늘어나 식량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나무를 베어내고 산지를 개간하였습니다. 또 온돌 난방에 필요한 연료인 장작의 수요도 증가하여 나무를 베었지요. 그렇게 산림이 점점 황폐해져 19세기 말 이 되면 북부 고원지대와 강원도의 깊은 산속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지가 발갛게 헐벗고 말았습니다. 19세기가 되면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거의 사라집니다. 그것도 산림이 황폐해져서 그랬지요. 산림이 황폐하자 조금의 비에도 홍수가 생겨 토사가 논밭으로 흘려내렸습니다. 그 결과 농업생산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도합 열셋 정도의 사례가 발굴되었는데요, 18세기 중엽에 비해 19세기 말이면 거의 1/3 수준의로 토지생산성이 감소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55-56]
중국문명권에서 이탈하여 서유럽문명권으로 편입된 역사가 20세기 한국의 역사입니다.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문명권으로, 대륙농경문명에서 해양상업문명으로의 일대 전환이 있었던 겁니다. [p.64]
3장 [조선왕조는 왜 망하였나] 에서
인간의 본성은 자유입니다. 그에 비출 때 일제의 조선 지배체제는 모순에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각종 세금은 거두어 가면서 정치적 권리는 인정하지 않은 것이 일제의 지배체제였습니다. 그런 모순은 어차피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모순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책은 조선인을 모조리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 것입니다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였습니다. [p.82]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목적에서부터 기존의 수탈론과 이해를 달리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기본 목적은 이른바 '영구병합'이었습니다. 일제가 남긴 통치사료를 보면 '영구병합'이란 말이 지겨울 정도로 자주 나옵니다. 영구히 일본의 영토로 삼겠다는 것이지요. 일본사람들은 여기에 20~30년간 살다가 돌아가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영구히 살려고 왔습니다. [p.83-84]
중화제국이라는 문명권의 일부로 위치했던 조선 문명이 자유를 인간의 본성으로 알고 개인을 궁극의 실체로 인정하는 서유럽 문명권으로 포섭되어 가는 그 대전환 말입니다. 제가 식민지기를 이해하고 또 일제의 지배체제를 비판하는 시각은 바로 그러한 '문명사의 대전환'입니다. 그러한 시각을 가리켜 세간에서는 흔히들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 진의가 올바로 이해되지 않은 가운데 편견에 가득 찬 비판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p. 83]
한국사에서 유·무형 재산의 포괄적인 범위에 걸쳐 사유재산제도가 성립하는 것은 1910년대 초의 일이었습니다. 전술한 대로 1912년에 일본의 민법이 이식되었습니다. 재산권에 관한 근대 민법의 기본 원리는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입니다. 소유권은 절대적이며, 국가도 이를 임의적으로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계약자유의 원칙'입니다. 이는 재산권을 양도하거나 처분함에서 소유자의 자유의사에 기초한 계약만이 법적으로 유일하게 유효라다는 것입니다. [p.91]
이렇게 재산제도를 정비한 다음 일제는 조선과 일본을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였습니다. 1920년까지 사치품 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관세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렇게 상품과 자본이 오가는 데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요사이 말로 FTA[자유무역협정]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에 따라 두 지역 간의 수출입 무역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자본이 일본에서 건너와 조선의 농토를 개간하고 수많은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식민지의 경제성장을 이끈 요인은 일본의 시장과 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일본인의 소유가 되지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식민지적 수탈이지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한반도의 자원과 공업시설을 일본인의 소유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화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수탈의 무서운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매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지요.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p.93-94]
5장 [식민지근대화론의 올바른 이해] 에서
... 근대적인 법, 제도와 시장경제체제가 그것이었습니다. 앞서도 지적하였습니다만, 이런 것들은 원래 서유럽에서 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일제가 남긴 것이라기보다 20세기 인류가 공유하는 선진 문명의 자산이라고도 하겠습니다. [p.173]
반면에 사회주의 북한은 풍부한 물적 유산을 받았지만 일제를 통해 들어온 근대적인 법과 제도를 폐기하고 말았습니다. 1946년 북한은 '건국 20개 조항'을 발표하면서 "일제가 통치의 목적으로 시행한 모든 법을 폐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일제의 재판기구를 인민으로부터 선발된 대표에 의한 인민재판기구로 대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근대적인 인간으로서 인격권과 재산권을 규정한 민법이 폐지되고, 또 사법(司法)에 의한 재판기구를 대신하여 인민재판이 행해지게 되면 그 사회의 인간들은 어떻게 됩니까. 다시 국가의 농노와 같은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북한은 근대문명을 부정하고 말았습니다. [p.173-174]
9장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유산] 에서
제국주의를 해체한 궁극의 힘은 무었일까요. 그것은 제국주의에 내재한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 제국주의는 식민지에다 근대를 이식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대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식민지 민중이 성장하자 제국주의의 지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근대화된 인간들을 언제까지나 정치적으로 차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배의 결과가 지배의 부정이 되는 것, 그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변증법적 모순입니다. 제국주의는 그러한 모순으로 조만간 해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주 식민지를 문명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변명했습니다만, 어느덧 제국은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p.195]
10장 [해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에서
...1948년 8월 15일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건국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기초하고 있는 자유, 인권, 국민주권, 사유재산, 시장경제 등의 문명은 원래 서유럽 기원으로서 20세기에 들어 일본과 미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입니다. 제3장에서 20세기의 역사를 대륙농경문명에서 해양상업문명으로의 전환으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만, 대한민국의 성립은 바로 그러한 문명사의 대전환으로 맺어진 결실입니다. 그렇지만 끝내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대전환의 역사적 전제로서 전통사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유재산제도와 농지개혁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에 준하는 재산권이 발달하고 농업경영의 주체로서 개별 소농의 자립이 추진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성립은 문명사의 대전환임과 동시에 전통의 발전적 계승이기도 했습니다. 진정 그러했기에 건국 초기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된 1960년대부터 다 잘 아시는 대로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p.231-232]
12장 [건국의 문명사적 의미] 에서